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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떠난사람 vs 하느님협박하는사람 -이지민-

이지민 2023-02-24 10:50:02

몸이 불편하다는 콤플렉스(complex)가 있어서인지 나는 비 오는 날을 죽도록 싫어한다. 날씨가 맑은 날에도 거리에서 걸어가다가 잠시잠깐 앞에 장애물이나 돌덩이에 걸려 넘어진다. 그런데 비 오는 날이면 한 손은 우산을 들어야 하고 중심 잡기도 더 힘들고 방어 기구(손)가 하나 줄어드니 더 말해 뭐하나. 멀쩡히 아무 콤플렉스 없는 사람들은 감히 생각 조차도 못하리라.
오늘은 즐거운 주말이오나, 빗님이 내리신다. 더욱이 저녁에는 성당에 특전 미사 참례하고 판공 성사까지 보려 했는데…….옛날에는 성당에 가는 날 비가 오면 으레 차를 타고 갔었다. 내가 비오는 날을 죽도록 싫어하듯이 이제는 어머니가 운전하기가 꼭 그 마음이란다. 몸이 불편해 평생 걱정거리만 안겨드리는 못난 내가 ‘이 때다’ 하고 걸어가자고 했다. 어머니가 좋아죽는 표정 애써 감추면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에게 한 마디 건네신다.
“지민아! 니 오늘 아침에 먹은 기 좀 잘못된 거 아이가?”
빗님이 오시니 물이 고인 데를 잘못 디뎌 첨벙첨벙거리면서 어머니와 나는 우산을 따로 각각 쓰고 걸어갔다. 이것만 해도 좋아진 거라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져본다. 작년까지만 해도 비가 오면 어머니가 우산을 들고 나는 어머니 손을 꼭 붙잡고 걸어가곤 했었다. 그렇게 작년까지만 해도 내겐 우산도 없었다.
성전에 들어가니 판공성사 보려고 고해소 앞에 먼저 와 있는 신자 두 명이 있어 나와 어머니도 차례대로 옆에 앉았다. 앉아서 그 동안 내 죄를 돌이켜보며 고백할 거리들을 마음 속으로 정리했다. 다른 종교들도 나름대로 이런 게 있을 지는 모르지만, 내 죄를 스스로 반성하고 고백하여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고해성사’라는 게 있는 가톨릭 교가 너무 마음에 든다.
내 차례다. 나는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천주교 신자라면 으레 하는 레지오 (:legio는 라틴어로 군대, 군단 등의 뜻. 레지오 마리애(Legio Mariae)또는 레지오는, 가톨릭 교회의 평신도 신앙 공동체를 말함) 활동도 못하고 봉사 활동도 못한다. 거저 주일마다 미사 참례하려 집에서 성당까지 꼬박꼬박 발바닥 품을 파는 ‘발바닥 신자’일 뿐이다.
더군다나 몸이 많이 아플 때는 묵주 꼭 쥐고 묵주 기도 바치며 천주교 신자인 척은 해본다. 하지만 아픔과 통증이 극에 달해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대놓고 하느님을 욕하거나 협박을 일삼는다. 이런 죄도 각 오 단단히 하고 눈 딱 감고 사죄하였다.
‘난 이제 죽었다’ 벌벌 떨며 ‘꾸지람 섞인 말씀과 아주 센 보속을 주시겠지?’ 하고 초조하게 기다렸다.
“내 마음에 차지 않을 때는 아무리 하느님이더라도 투정을 해야 하느님이 눈이라도 껌쩍 하시겠지요? 그렇게 욕도 하고 협박까지 해가면서 앞으로도 하느님과 계속 친해지세요. 그래도 하느님은 하느님을 떠나있는 사람들 보 다는 욕하는 글라라 자매님이 훨씬 더 좋다고 하신답니다. 보속으로는 선 행 한 가지 하세요. 몸은 불편하지만 더 힘을 내고 당당해지세요. 파이팅 입니다. 자매님을 응원할게요.”
성호경을 긋고 고해소 문을 열고 나오면서 신부님의 뜻밖의 말씀에 마음이 좀 얼떨했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에 있는 희망은 모두 내가 가진 듯 감사했다. 또한 ‘내 편 한 명 추가’ 보너스까지 얻었으니 大대박이다. ‘오예!’
내가 친구도, 지인도 아니고 건방지게 감히 저 위에 계신 하느님을 협박하는데 찬성 내지 동의 표도 얻었겠다, 앞으로는 꿀리지 않고 더 당당히 맘껏 협박하리라.
“하느님! 제 왼쪽 발목이 아직도 많이 아픕니다. 어서 싹 씻은 듯이 낫게 해 주세요. 요번에 낫게 해 주시지 않고 그냥 모른 척 넘어가면 글라라(내 세례명)도 하느님이고 뭐고 없습니대이. 절에 가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 살’할 지도 몰라용. 하느님 저한테 만큼은 긴장 좀 하셔야 될 걸요? 책임지 세용”
뭐 이런 식이다. 가히 도발적이라 할 만하다.
과연 나는 키도 작고 몸집도 왜소하지만, 누구도 덤비지 못하고 저 위에 계신 하느님을 일으켰다 내렸다 갖고 노는 대범한 사람이다. “하하하하하!”